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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진씨의 최근 근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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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1-02 17:39 조회4,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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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마라톤 D-5] 2001년 완주 그 후… '말아톤' 배형진 母子의 인생마라톤
원주로 2년 전 이사 장애우들과 카페 일봐 "사회적인 벽 있지만…"

"지금 우리 모자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맑은 공기 속에 함께 등산하고 운동하고 영화도 보고요. 마라톤이 우리의 인생을 바꿨고 많은 기회를 줬지요."

2001년 10월 21일 춘천마라톤 풀코스 피니시라인을 비틀거리며 통과한 18세 소년이 있었다. 2시간57분07초의 기록이었다. 마라토너의 꿈이라는 서브 스리(sub-3·세 시간 이내 완주)에 해당하는 대단한 질주였다.

그가 배형진(27)이었다. 자폐증과 2급 정신지체 장애를 지닌 배형진의 이야기가 영화 '말아톤'이 됐다. 2005년 상영된 그 영화를 500만 관객이 보며 눈물 흘렸다. 지금 아들과 엄마 박미경(52)씨는 강원도 원주 명륜동에 살고 있다.

2008년 맑은 공기와 넓은 집터를 찾아 서울을 떠난 모자(母子)는 새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영화 상영을 계기로 '말아톤 복지 재단'이 설립됐고, 형진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카페 '올 커피&티'(분당)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일을 배운다.

 
배형진군(왼쪽)에게 어머니 박미경씨는 교사이며 마라톤 스승이기도 했다. 박씨는“마라톤을 통해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박씨는 장애 아동을 가진 다른 부모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형진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다. 하지만 지금처럼 마음의 평온을 얻기까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고 한다. 박씨는 말했다.

"산을 넘었다 싶으면 또 산이 나타났죠. 먼 거리를 힘겹게 달렸는데 정신을 차리면 제자리였고요. 한때는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형진은 영화로 스타가 됐지만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형진은 영화가 개봉될 때 장애인들이 일하는 경기도 하남의 악기 조립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폐 증상이 있는 그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되는 업무의 스트레스를 버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공장에서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쓰러지는 일이 생기자 결국 일을 접었다. 이후 안성의 화훼 농원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아들 못지않게 엄마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몸이 벽과 벽 사이에 낀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고 온몸이 아팠어요.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암에 걸려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다'며 우울증 치료를 제안했습니다." 엄마는 2년여 치료를 받은 뒤에야 평온해졌다고 한다.

그는 "악다구니처럼 아이에게 욕심을 부리며 살아오다가 내가 병이 났다"며 "지금은 형진이를 통해 욕심을 버리는 걸 배웠다. 아들이 내 스승이 됐다"고 했다. 지금도 배형진의 정신 연령은 6세 수준이다.

하지만 늘 웃고 어른들에게 예의 바른 청년이 됐다. 주민들도 '말아톤'의 주인공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준다. 박씨는 "마라톤이 없었다면 형진이가 지금처럼 정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고 사회성도 키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공기 맑은 원주에서의 생활은 좋지만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서울보다 불편한 점도 있다. 한번은 수영장에 등록하려고 했지만 '장애인은 받아들인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장애아를 키우는 일은 이런 식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요즘도 하루에 두 시간 이상 등산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형진은 "등산 가면 공기가 좋고 시원해. 엄마랑 영화 보러 가는 것 너무 좋아"라고 했다.

"산이 나타나면 또 넘으면 되죠. 제자리로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계속 걸어갈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처지를 더 세심하게 보살펴 줬으면 좋겠어요." 모자의 인생 마라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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